여행 후기
첫 번째 25살에 꿈꾸던 유럽 여행
황*숙 님
2024.02.17
조회 313
친구와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유럽 배낭여행 일정을 짜던 중 무거운 짐을 들다 탈 난 허리 탓에 친구는 다른 사람과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드디어 나도 간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도 같이 간다. 하하하~ 딱 기다려라. 겨울에도 우리나라보다 따뜻하다고 해서 고른 노랑풍선의 스페인·포르투갈 9일 상품이었다. 어떤 여행이 될지 너무나 기대가 되어, 여행준비물을 사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모 카드사의 트레블 로그에 유로를 충전했다. 환전수수료가 무료여서 가성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상점, 슈퍼마켓, 고속도로 휴게소 등 모든 장소에서 결제가 자유로웠다. 아쉬웠던 것은 곳곳에 거리의 악사들이 플루트, 첼로 등의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하는데 유로 동전이 간절했었다. 급한대로 한국 돈을 넣은 때도 있었다. 호텔 청소 팁은 공항에서 1달러짜리로 바꿔왔는데, 역쉬~ 해봐야 알게 되는 것이 여행의 묘미다. 와이파이 도시락은 데이터 무제한으로 예약하고 공항에서 대여했다. 장시간 도시를 이동할 때 동영상 시청이 가능해서 좋았다.
1일차
목베개가 얼마나 대단한 발명품인지를 알게 되었다. 오전 11시 30분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13시간 20분 동안 걍~ 쌩 날아가야 도착한다. 8시간 과거로 가는 여행이라 출발 한 날 오후 5시 30분에 도착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이패드에 넷플릭스의 경성크리처를 담아갔다. 덕분에 갈 때 올 때 모두 보게 되었다는, 무거운 주제를 괴물을 넣어 무척 재미있게 만들어서 몰입도 최고였다. 바르셀로나 공항 2터미널에 도착하니, 이경아 가이드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출발하기 전 준비물과 현지 날씨 등 궁금한 것을 전화로 미리 알려주셨기에 넘~ 반가웠다. “우리 팀~” 중독성 있는 멘트로 33인의 패키지 팀원 모두를 챙기시는 베테랑 가이드님! 이분의 활약상을 기대하시라. 호텔 이동 후 자야 하지만 어디 그렇게 되나? 시차라는 놈과 싸워야 하는 첫날이다. 피곤하면 급 라면 땡기는 한국인이니까~ 잘 밤에 김치에 라면 정도는 먹어 줘야 한다. 블로그에서 알려준 대로 호텔에 커피포트가 없었다. 7박 중 2번 정도 없었던 것 같다. 짜아잔~ 접이식 휴대용 전기포트야~ 너의 능력을 보여줘~ 컵라면을 맛나게 먹고 잘 잤다. 맛사지 건으로 뭉친 목 부위도 풀어주었다.
2일차
호텔 조식은 햄과 치즈가 맛있었다. 어떤 과일은 우리나라 대추 모양인데 씨가 없고, 팥 맛이 나서 이색적이었다. 몬세라트에 갔다. 도착하니 날씨가 우중충했다. 가이드님이 호언장담하셨다. 올라가면 쾌청한 파아란 하늘을 보게 될 거라고 하셨다. 세라트가 톱니바퀴고, 몬이 산이라고 하셨다. 과연 톱니바퀴처럼 뾰족뾰족한 암벽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스테고사우루스라는 공룡 모양이라 신기했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맑고 투명했다. 친구들 유럽 여행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잘 나와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가족도 모델 뺨치게 잘 나왔다. 뭐랄까? 옛날 달력 화보 찍는 감성 그대로였다. 십자가 전망대에서 구름의 바다를 내려다보니 장엄한 느낌이 들며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내가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는구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게 하는 곳이었다. 다시 바르셀로나로 왔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렸던 몬주익 언덕에 갔다. 마라톤 영웅 황영조 선수를 기념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우리 팀 옆에서 얼쩡거리는 남녀 1쌍이 소매치기라고, 가이드님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마치 어미새가 아기새를 지키듯이 도둑들을 경계하셨다. 관광버스에 타고 보니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던 남자 둘까지 4명이 모여서 우리 버스를 아쉬운 듯이 쳐다보았다. 먹이를 놓친 하이에나 같았다.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가우디의 건축물 까사밀라와 까사바트요를 구경하러 갔다. 자유시간 1시간을 주셨다. 패키지여행에 자유관광 이라니 횡재한 느낌이었다. 거리는 아름다웠다. 건물들이 다르면서도 색감과 모양에 규칙성이 있었다. 까사밀라에서 알록달록한 도마뱀 양말을 샀다. 평소에 특이한 양말을 모으는 딸내미에게 딱 맞는 선물이어서 흥이 절로 났다. 내부의 화장실도 유니크 했다. 화장실이 보이면 볼일을 봐야 한다. 무료니까~ 히히! 서점에 들러 스페인 지도도 보고, 어린이 책으로 초 간단 스페인어도 익혔다. 우리나라 작가의 만화책도 있었다. 나폴레옹에 관한 책이 많았다. 그라나다로 가는 국내선을 타기 위해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갔다. 그라나다의 호텔은 깨끗하고, 어메니티도 다 갖춘 맘에 쏙 드는 곳이었다. 따뜻하게 자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3일차
호텔 식당은 작지만 깨끗하고 품격있었다. 음식도 최고였다. 팀원들 모두 저녁식사 때까지의 양을 모조리 드시고 계셨다. 맛있는 걸로 대동단결~. 그라나다는 석류라는 뜻이다. 알함브라는 붉은 철이 들어간 흙으로 지어져 붉은 성이라고 하셨다. 현빈과 박신혜가 주연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재밌게 봤던 터라 기대가 되었다. 알함브라 궁전은 천연의 요새였다. 방어를 위해 높은 산 위에 지어졌고, 성 옆으로 해자가, 뒤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지켜 주었다. 한국에서도 예쁜 꽃을 보기 위해 철 따라 구경 가고, 식물원을 좋아하던 터라 알함브라 내부의 조경과 분수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늘어선 길을 따라 걸으며, 천국을 생각하며 조경을 했다는 이슬람 건축의 양식에 빠져들어갔다. ‘여긴 천국, 나는 천사’ 물소리 졸졸졸 소리가 마음을 평화롭게 어루만져주었다. 벨라탑 전망대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맛도 일품이었다. 알 카사바 요새를 빠르게 지나쳐가 아쉬웠다. 여기가 드라마 촬영장소라는데. 흑~ 흑 갈 곳은 많고, 시간은 빠듯하니 다음에 또 와야지 결심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바깥 건물은 사각의 네모반듯한 모양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로마의 원형 궁전이 나타난다. 론다로 고고~. 누에보 다리는 120m 깊이의 협곡 위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진 맛집 맞았다. 원없이 찍었다. 자유시간에 광장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와 아포가토를 먹었다. 날씨 요정이 도와주는지 바람 때문에 걸을 수도 없었다는 가이드님의 설명이 무색하게 쨍하고 변함없이 따뜻한 날의 연속이었다. 론다는 바람 덕에 풍력발전기가 많은 곳이란다. 그런데 길가에 핀 벚꽃과 유채꽃은 한국의 4월 날씨랑 똑같았다. 이상기후라고 하셨다. 스페인 선택하길 잘했어. 마지막으로 2시간을 달려 세비야에서 플라멩고 공연을 보았다. 무용수들의 탭댄스 스텝은 심장을 두드리고, 손목을 많이 쓰니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표정도 인상을 쓰고 연기해서 강렬했다. 호텔로 와서 석식을 먹으니 벌써 저녁 10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많이 걸어서 피곤한 종아리에 휴족시간을 붙이고, 눈을 뜨근 뜨근하게 해주는 안대도 썼다. 낼 여행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4일차
그동안 묵었던 호텔 중에 규모가 가장 컸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식당에서 빠르게 아침을 먹었다. 재빠르게 이동한 덕에 스페인 광장에 도착하니 우리 팀밖에 없었다. 고딕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섞인 광장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지어져 깨끗하고, 타일도 감성을 자극했다. 여기서도 예쁜 사진 많이 건져서 기억에 남는 장소다. 마차 투어는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경험상 패키지 여행에서 말이나 코끼리를 타면 사진만 찍고 내렸었다.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도시를 달렸다. 다가닥 다가닥 말밥굽 소리가 돌바닥과 만나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이국적인 나무들이 아침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원을 벗어난 마차는 도로로 들어갔다. 차들과 같이 달리는 이상한 풍경에서 그만 내 기분이 하늘로 올라갔다.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에 무장해제 되었다. 마차에서 내리니 바로 메트로폴 파라솔 전망대였다. 선택 관광 중에서 120유로로 가장 비싼 옵션이었는데, 만족도 최고다. 전망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높지 않으면서도 주변 세비야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우리나라 리움 미술관도 세운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졌다고 한다. 신나게 구경을 하고, 한식당에 왔다. 보리새우를 넣은 미역국이 환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세비야 대성당을 들렀다. 그 어마어마한 층고와 화려함에 압도되었다. 몬세라트에서 자연의 위대함에 감동했다면, 여기서는 인간의 지성과 욕망의 결합체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 성당 중 3번째로 규모가 크다고 한다. 세비야가 얼마나 번창한 도시였는지 알 수 있었다. 성당 내 유력가문들의 기도실(채플)은 서로 경쟁하듯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콜럼버스의 관을 고트족이 메고 있었다. 스페인에 묻히길 거부했던 콜럼버스의 유언에 따라 여기저기 떠돌던 관을, 그래서 들고 있다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포루투갈의 리스본으로 출발~.
5일차
Hotel은 특이하게 3인룸이 구성되어 있었다. 독립된 두 개의 호실을 중간벽에 문을 통해 연결해 놓았다. 드디어 혼자 자게 된 딸의 즐거움은 숙면으로 보상을 받았다. 조식도 빵빵했다. 리스본 항구에 있는 등대였던 벨렘탑을 구경했다. 1층은 수중감옥이었다고 한다. 물이 코끝까지 차올라 죽음의 공포를 하루에 한번씩 죄수들에게 안겨주었다고 한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으로 이동해 명물인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로시오 광장도 구경했다. 버스를 타고 까보다로까로 향했다. 노란꽃이 만발한 언덕에 빨간 등대가 서 있었다. 파아란 하늘이 두둥실 떠올라 사방에 꽉 차 있었다. 그 보다 더 짙은 대서양은 침묵하며 누워있었다. 숨 막히는 색채의 향연이다. 이 와중에 악사는 연주를 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눈과 귀가 호강하느라 바빴다. 처음으로 돈을 내고 화장실에 갔다. 가이드님이 대부분 무료화장실로 안내했지만, 일정상 이런 곳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화장실 천국임을 뜻하지 않게 알게 되었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오비도스다. 포르투갈의 어떤 왕이 왕비를 위해 선물로 준 마을이라고 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초콜릿 잔에 체리주를 담아 팔았다. 술도 먹고 잔도 먹었다. 오래된 골목길은 어디나 포토 스팟이었다.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끝내주는 길거리 성악가와 플루트 연주자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부인 파티마 대성당에 들렀다. 가이드쌤이 파티마 대성당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흥미진진하지만 듣고 나면 휘발되어 버리는 아까운 얘기들이 대방출되었다. 미국 체로키 인디언의 음악을 차용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들려주셨다. 밤의 신비가 내려앉은 파티마 성당은 멋있었다. 쌤은 다시 한번 우리의 수신기에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채우셨고, 이제 파티마 성당은 거룩한 음악 속에서 내 기억에 생생히 살아있으리라.
6일차
새벽 5시 20분에 호텔을 떠났다. 차 안에서 7시 30분쯤 도시락을 먹었다. 휴게소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가이드 쌤이 버스 안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우리나라 악기인 태평소 버전으로 들려주셨다. 생경한 감동이었다. 태평소 소리의 애절함이 어찌나 찰떡같이 음악과 어울리던지 아침부터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스페인 통일을 이룬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는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었다.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레콩키스타를 완수한 이도 이사벨이었다. 1492년 그라나다를 점령함으로써 800년의 이슬람 역사는 끝이 났다. 통일된 스페인의 역사보다 더 긴 세월을 이슬람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 탑 아래부분도 이슬람 양식이고, 성안 네모난 정원에 심어져 있던 오렌지 정원수도 그들의 문화였다. 그러나 이사벨 여왕은 종교재판을 창시할 정도로 이슬람인과 유대인을 배척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국력이 약해졌다고 한다. 딸인 후아나의 직계로 알함브라에 궁전을 세운 찰스 5세는, 철수로 뇌리에 박혀있다. 가이드쌤의 놀라운 개명능력 히히~. 그의 아들인 펠리페 2세때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집안의 내력은 부정교합의 주걱턱으로,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목받침을 착용하고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그 후의 방대한 얘기는 중간생략하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현재 서로 앙숙이란다. 아무튼 5시간 걸려 톨레도에 도착했다. 톨레도 대성당에 갔다. 엘그레꼬의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그림이 프레스코화로 천장을 채운 넓은 홀에 걸려 있었다. 다른 방에는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성체현시대에 다이아몬드를 제외한 모든 보석이 붙어 있었다. 트렌스파렌테는 톨레도 성당에만 있는 양식이다. 자연광이 예루살렘 방향의 천장 창에서 들어와 벽의 태양 조형물을 비추면 성당 안으로 햇살이 퍼지도록 건축되었다. 산토토메 성당에 가서 엘그레꼬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보았다. 생전에 신앙심이 깊고 자선을 많이 베푼 오르가스 백작이 성인들에 의해 매장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그림이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중앙광장(마요르)과 태양광장(푸에르타 델 솔)에 갔다. 마요르 광장에 쏟아지던 햇살은 모든 사진을 예술로 만들어 주었다. 자유시간의 마지막 1분까지 쥐어짜 사진을 찍었다. 태양광장에 있는 추러스 맛집은 줄이 길었다.
7일차
조식 오픈런을 했다. 6시 30에 밥을 준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미리 와서 대기 줄을 서고 있었다. 모든 관광객이 이곳에 집결했나?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니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었다. 4층에서부터 캐리어를 들고 내려와야 했다. 한시간 정도 달려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로마 시대 수도교는 웅장했다. 양차 세계대전 중에 잘츠브르크와 세고비아는 공중폭격을 하지 않기로 조약을 맺어 간신히 원형을 보전했단다. 2,200년을 버티고 서 있는 다리가 대견했다. 알카사르성까지 걸어갔다. 과연 디즈니의 그 성다웠다. ‘유럽의 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형화된 이미지 그대로였다. 가이드님이 래퍼처럼 이사벨 여왕의 얘기를 많이 쏟아 내셨는데, 마침내 왔다. 이사벨왕의 기도실, 접견실, 결혼식을 했던 곳, 침대(충격적으로 작았다. 원죄를 지은 인간은 편하게 자지 말고 웅크려 자라는 신의 뜻이란다) 등을 봤다. 다시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으로 이동했다. 뭐하나 버릴 것 없는 이번 여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한 곳이다.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마주하면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냥 내가 여기에 있다는게 비현실적이었다. 대가의 작품들을 휙휙 지나가야 해서 마음이 찢어졌다. 벨라스케스의 마르게리타 공주 그림, 보쉬의 창의적인 그림들, 루벤스의 작품, 고야의 그림들을 봤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궁금한 분은 무조건 오시라~ 노랑풍선으로 오세요~ 히히! 사라고사로 출발~. 숙소로 들어가기 전 숯불에 구운 닭을 먹었다. 쌀밥에 고추장을 뿌려 먹어도 맛있었다. 패키지 팀의 한 분이 남편에게 소주를 주었다. 맥주는 넘쳐 나지만 소주는 모셔온 거라서 귀한 몸이시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부부팀들과 술을 나눠가며 흥겹게 즐겼다.
8일차
사라고사에서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7시 조식을 먹었다. 7시 30분에 출발했다. 3시간 30분 가량을 달려야 바르셀로나에 간다. 성 가족 성당과 구엘 공원을 보고 공항에 가야 했다. 바쁜 일정 탓에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휴게소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과자와 뚜론을 샀다. 서두른 덕분인지, 원래 잘 나가는 도로인지 막힘없이 신나게 달렸다. 갑자기 차가 막혔다. EU의 농민들이 유럽 전역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고, 스페인 농민들도 고속도로를 트랙터로 막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아침 호텔 로비에서 가이드님이 오늘 시위 일정을 알고 걱정하고 계셔서, 뉴스를 찾아봤더랬다. 그래서 무료 도로에서 유료 도로로 진입했었다. 바르셀로나를 92Km 남겨둔 현 상황까지 정말 잘 왔기에 앞으로 1시간 가량만 더 달리면 된다고 안심하던 시점이었다. 꼼짝없이 버스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스페인은 버스의 시동을 켜면 ‘타코미터’라는 기계가 운행거리와 시간을 저장한단다. 이 기록을 가지고 휴식 시간이 지켜졌는지 체크하고, 근무일수를 산정하는데 쓴단다. 시동을 끈 버스는 이상기후 탓에 점점 실내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해서, 에어컨도 켜지 않은 버스 안에서 패키지 팀원은 더위에 어쩔 줄 몰라하셨다. 벌써 2시간째다. 화장실 가고 싶은 분들은 도로 옆 풀숲에서 대강 해결하셨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화장실 다녀오니, 더위 때문에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며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펼쳐졌다. 가이드님과 기사님이 함께 내려서 시위대 쪽으로 가셨다 돌아오셨다. 어떤 스페인분이 같이 버스를 탔다.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우리나라 뉴스에서 보았다. 꽉 막힌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차량 들이 양옆으로 바짝 붙으며 중앙의 길을 만들어 응급차를 보내주는 모습 말이다. 앞의 좌석에 앉았기에 모세의 기적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옆 차와 깻잎 차이만큼 틈을 사이에 두고 우리 버스가 앞으로 가고 있었다. 마침내 트랙터가 가로막은 곳까지 왔다. 시위대가 지역별로 나뉘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동승한 스페인분은 여러 번 내려서 사정을 설명해 트랙터를 이동시켜 버스가 지나가도록 돕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 분이 버스에 오지 않았다. 다시 제 속도로 달리게 되었다. 우리는 버스 기사 알바로와 이경아 가이드님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냈다. 점심도 건너뛰고, 입장 가능한 성가족 성당에 갔다. 미친 듯이 아름다운 성당을 즐겼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왜 중세인들이 성당을 통해 감화되고 카톨릭을 믿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마치고, 오후 4시에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나른해졌다. 7시 25분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10시 25분 출발로 바뀌었다. 대략 3시간 뒤였다. 눕지 못하게 칸 분리된 의자가 불편해 탑승 게이트에서 떨어진 어린이 놀이터에 누워있었다. 꾸르륵 잠이 들었다. 핸드폰의 문자 수신음과 카톡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벨이 울렸다. 가이드님이었다. “어디세요? 아~ 진짜~ 빨리 탑승하시라구요!” 출발시간이 한 시간 당겨진 비행기에서 우리를 찾고 있었다.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 다시 목베게를 베고, 슬리퍼로 갈아신고, 아이패드를 꺼냈다.
9일차
돌아오는 비행기는 겨우 12시간 걸린단다. 껌이지~. 다음엔 남미에 가볼까? 장시간 비행이 젤 걱정이었는데,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앉아 있으니 내 집처럼 편안했다. 밥 2번 먹고, 잠을 아껴가며 영상을 시청했다. 급 피곤이 몰려오던 시점에, 어느덧 인천이란다. 너무 몰입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와이파이 공유기를 딸더러 반납하라 시키고, 남편과 나는 캐리어를 기다렸다. 팀원들과 굿바이 인사도 못할 만큼 체력이 바닥났다. 재미에 목숨 걸다가, 사람 구실을 못했다. 나는 언제 철들까? 히히~ 정 많고 유쾌한 1조의 15분 들. “전립선에 문제가 있어” 화장실 수도꼭지의 물이 시원찮게 나오자 대뜸 이렇게 말씀하셔서 정말 빵 터졌다. 여행중 행복 바이러스를 전염시켜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33분이 5조로 나뉘어 서로를 챙기며 이동했었다. 눈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작은 도움을 주고 받았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어본다.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초유의 상황에서 난관을 해결하고,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게 해준 이경아 가이드님이셨다. 이경아 쌤 짱이예요~^^. 든든한 엄마 같은 이경아 쌤과 또 여행가고 싶네요. 마지막까지 우리를 챙겨준 경아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한면적의 6배 정도 넓이를 가진 국가들의 멋진 관광지를 촘촘히 연결하고, 비행기로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킨 여행 일정을 제공해주신 노랑풍선에게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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