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투어 리더 박지인, 발칸3국의 여신!
김*미 님
2025.10.29
조회 418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발칸’과 ‘발틱’을 구분하지 못했다. 터키어로 발칸(Balkan)은 ‘산맥, 험한 산지’를 뜻한다는데, 말 그대로 이동할 때마다 산길을 돌고 돌아야 했다. 이제 기억을 더듬어 그 여정을 적어본다.
첫째 날
크로아티아(Croatia)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 자그레브(Zagreb)에 밤늦게 도착해 하룻밤을 묵었다. 호텔엔 헤어드라이어도 없어 ‘가격이 저렴하니 그러려니’ 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숙소는 점점 나아졌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매력이 느껴졌다.
둘째 날
이른 아침, 안개 낀 풍경을 바라보며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Ljubljana)로 향했다. ‘사랑스러운 도시’라는 뜻의 이름답게 분위기부터 낭만적이었다. 프레세레노프 광장에는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 프란체 프레세렌(France Preseren)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상 맞은편 건물 2층에 반입체 부조가 있는데 프레세렌이 사랑한 여인이라고 하니, 발상이 참 기발했다. 프레세렌은 슬로베니아 문학과 국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그의 시 ‘건배’에서 국가(國歌)의 가사를 가져왔다고 한다. ‘신이시여, 슬로베니아인을 지켜 주소서….’ 어디든 애국가는 가슴을 울린다. 류블랴니차강을 건너 짧은 후니쿨라(Funicular)를 타고 류블라냐 성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성에서 내려온 뒤에는 야외시장에서 과일을 사 서로 나누어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길쭉한 보라색 자두(Plum)가 맛있었다. 마르면 건자두(Prune)가 된다고 한다.
오후에는 절벽 위의 고성,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블레드(Bled) 성으로 향했다. 붉게 물든 아이비가 벽을 감싸 가을 정취를 더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말 그대로 목가적이었다. 저 멀리 알프스의 만년설이 흐릿하게 보였고, 빙하가 만들어낸 호수와 작은 마을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블레드 호수에서는 전통 목조 노 젓는 배 ‘플레트나(Pletna)’를 타고 호수 중앙의 작은 섬으로 갔다. 아담한 성모승천 성당의 종을 세 번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종을 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호숫가의 호텔은 과거 북한의 권력자가 묵은 곳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기념품점에서 블레드 성이 그려진 컵과 식사 후 마셔볼 슬로베니아 특산 화이트 와인을 샀다. 밤에는 슬로베니아 북서부의 산악지역에 있는 작은 로지(lodge)형 호텔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옅은 안개에 덮인 마을은 고요했고,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물은 일본의 시골 풍경을 연상시켰다.






셋째 날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동굴(Postojnska jama)로 갔다. 슬로베니아어로 Jama가 동굴인데 발음을 ‘야마’라고 하여 한국 비속어를 아는 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카르스트 동굴이라고 하는데 내가 본 동굴 중 가장 컸다. 전체 24km에서 약 2km 정도는 열차를 타고, 1.5km 정도는 걸으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종유석이 1cm 자라는 데 약 100년이 걸린다니, 200만 년 세월의 흔적이 새삼 경이로웠다. 커튼 홀, 스파게티 홀 등 종유석의 모양에 따라 다양한 이름들이 붙여졌다. 동굴 안에는 눈이 먼 희귀 도롱뇽 ‘올름(Olm)’도 살고 있었다. 서늘한 동굴에서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따뜻했다. 파란 하늘과 노랗고 붉게 물든 나뭇잎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했다.
오후에는 작은 베네치아로 불리는 항구도시 피란(Piran)으로 향했다. 아드리아해 남쪽으로 크로아티아가 보였다. 날씨가 아주 맑을 때는 서쪽으로 이탈리아도 보인다고 한다. 타르티니 광장의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 1692~1770) 동상 앞에서 설명을 들었다.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타르티니는 슬로베니아 피란 출신이다. 베네치아 공화국 시대엔 국적이 이탈리아였다고 한다. 수도 류블라냐엔 시인의 동상이, 항구도시 피란엔 음악가의 동상이 서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 판매원들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슬로베니아를 떠나 크로아티아 카를로바츠의 숙소로 가는 길에는 명화에서나 보던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넷째 날
목적지는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 국립공원(Plitvička jezera). 16개의 계단식 호수와 98개의 폭포가 어우러진 이곳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에메랄드빛 호수와 가을빛 물든 숲을 걷는 동안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크로아티아 국기와 지도가 그려진 컵을 샀다.
오후에는 아드리아해 연안의 반도인 고대도시 자다르(Zadar)로 이동했다. 로마 느낌이 났는데 고대엔 로마의 속주였다고 한다. 중세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을 땐 ‘자라(Zara)’로 불렸다. 오늘날 스페인 의류 브랜드 Zara의 이름이 이 도시에서 유래했다니 흥미로웠다. 현지 가이드 ‘소냐’가 태극기 문양의 양산을 쓰고 나와 한국말로 유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로마 광장, 성 도나투스 교회, 파도로 소리가 나는 바다 오르간, 태양광 조형물 ‘태양의 인사’까지 둘러봤다. 우리 팀원 중에 방송에서 소냐를 봤다는 이가 있어 반가워하며 함께 사진도 찍었다. 내가 입은 옷이 크로아티아 국기 색이라고 하니, 소냐가 태극기와도 색이 비슷하다고 하였다. 자유 시간에는 좁은 골목의 상점들을 구경했다. 한 상점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그려진 머플러를 발견해 기념으로 샀다. 좁은 골목길에 놓인 낡은 체중계에 한 청년이 동전을 넣고 몸무게를 쟀는데 100킬로가 넘었다. “요즘 너무 많이 먹었다.”라고 멋쩍게 말해서 나도 그렇다고 맞장구쳐 주었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엔 시장·광장·기차역 같은 공공장소에 이런 체중계가 있었다고 한다. 복고풍 물건이 구도시와 잘 어울렸다. 늦은 저녁에 도착한 크로아티아 시골의 호텔에는 결혼식이 끝나고 있었다. 하객들이 대형 크로아티아 국기를 흔들며 마을을 돌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호텔 식당에서 밤새 파티를 한 모양이다. 음악 소리가 계속 났다.


다섯째 날
공식 명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향해 출발했다. ‘보스니아’라고 부르는 게 익숙하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의 사라예보는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곳으로, 한국이 첫 단체전 금메달을 딴 역사적 도시이다. 아직도 사라예보는 이에리사 선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1914년 제1차세계대전의 발단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과, 보스니아 내전 중인 1995년에 인종 학살의 참극이 일어난 곳이다. 이렇게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전쟁 사건의 현장인 보스니아를 직접 가본다니 약간의 긴장감이 들었다. 보스니아가 EU 비회원국이라 국경 통과에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디지털 국경관리 시스템(Entry/Exit System; EES)이 하필 우리 팀이 출발하기 이틀 전(2025년 10월 12일)부터 시행되었다. 안면 인식과 지문 채취, 여권 스캔 절차가 추가되었다. 버스에서 기다리는 동안 보스니아 내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시간에 차질이 생겨 박 팀장님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전화하고 있었다.
모스타르 다리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파괴되었다가 유네스코의 주도로 복원된 상징적 건축물이다. 좁은 골목의 터키풍 상점들은 사람들로 붐볐고, 시장 물건값은 크로아티아보다 저렴했다. 포토 존에서 줄을 서야 했고 관광객은 사진의 배경이 되었다.
오후엔 천주교 순례지 메주고리예(Medjugorje)를 찾았다. 1981년 성모마리아가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지이자 관광지로 알려졌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넓고 현대적인 파티마 성당과는 달리 비탈진 언덕을 힘들게 올라가야 성모마리아 상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위에는 나무로 조각한 예수상이 있는데 성모상처럼 순례자와 관광객으로 둘러싸였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서양인들의 모습을 보니 숙연해졌다.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인지 성령이 충만해서인지 궁금했다. 안전 문제로 못 올라가게 하면 편할 텐데도 이곳을 방문하게 해준 투어 리더한테 신앙심이 깊은 팀원들은 무척 고마워했다. 돌이 미끄러운 험한 길이라 등산화가 필수였다. 비가 오면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 내가 내려오니 팀원들이 박수 쳐 주었다. 이어 검은색 ‘치유의 예수상’으로 갔다. 하도 만져서 노란색으로 반들거리는 예수상의 다리를 손이나 천 등으로 문지르면, 그 손이나 천이 ‘성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면 축복·치유의 은혜가 전달된다고 했다. 한참 줄을 서서 따라 해 보았다. 성 야고보 성당 앞 광장에서 많은 이들이 야외 예배를 드리는 광경을 보며 어스름할 때 성지를 떠났다. 토요일 저녁에 예배가 있나 보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남부, 즉 헤르체고비나 지역에 있는 보스니아 유일의 해안 도시인 네움(Neum)에 숙소가 있었다. 아드리아 바닷가의 아담한 호텔에 저녁 늦게 도착했다. 날이 밝은 뒤 주변을 보니 잡지에서 보던 유럽의 휴양지 느낌이 났다. 호텔 입구의 히말라야 시다 나무와 발코니 창으로 보이는 분홍색 부겐빌리아는 휴양지의 풍광을 완성했다. 그 호텔 식당에서 서빙 하던 남성은 영화배우 ‘율 브리너’가 환생했나 싶었다.


여섯째 날
발칸 여행의 하이라이트, 두브로브니크(Dubrovnik)는 크로아티아 최남단의 해안 도시로, 중세 라구사 공화국의 수도였다.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도시 전체를 둘러싼 거대한 성벽과 성벽 내 구시가지는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성벽을 바라다보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배에서 팀원들끼리 서로 화보 사진을 찍어주며 웃고 즐겼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서 만남의 장소로 쓰이는 오노프리오 분수, 옛 라구사 공화국 시절 정부 청사인 렉터 궁전과 세관이었던 스폰자 궁전의 전면을 보고, 하얀 대리석이 깔린 스트라둔 거리를 걸으며 카페, 레스토랑, 상점들을 둘러보았다. 드디어 성벽 위로 올라가 성벽 길을 반 바퀴 걸었다. 사람들이 왜 이곳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성벽에서 내려와 구시가지에서 레몬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Holy Burek’이라는 패스트리 가게에서 치즈 부레크를 맛보았다. 길이가 약 40cm나 되는 막대 모양의 빵은 생전 처음 먹어보았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전날 묵었던 네움의 숙소로 갔다. 저녁 식사 후 호텔 앞 해변 산책길로 나가니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우리 팀원들만 있었다. 팀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잔잔한 바닷가에서 물수제비 뜨기도 하는 낭만적인 시간을 보냈다.






일곱째 날
산길을 돌아 크로아티아 스플리트(Split)로 향했다. 두브로브니크가 ‘중세의 보석 같은 요새 도시’라면, 스플리트는 ‘고대 로마의 궁전 위에 세워진 살아있는 도시’라고 한다. 스플리트는 아드리아해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이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지은 해안 궁전을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로, 지금도 주민들이 궁전 안에서 거주하면서 상점과 식당을 운영하여 스플리트 구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로마 유적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뛰어나 197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우리나라 유명 배우가 방문했다는 신발가게도 들러 보았다. 석조건물 기단부에 걸터앉은 노파 앞에는 낡은 신장·체중계와 칠이 벗겨진 나무 의자 위에 다 마신 종이컵이 있었다. 그 장면은 세월과 삶의 무게를 말해주었다. 골목이라 하기엔 너무 짧은데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골목이라고 해서 둘이 나란히 지나가 보았다. 해변 거리는 줄지어 늘어선 야자수로 남국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어 버스로 30분 정도 거리의 트로기르(Trogir)를 방문했다. 작은 섬 위에 세워진 중세 도시로 고대 그리스·로마·베네치아 시대의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섬 전체가 1997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작은 스플리트라 불릴 만큼 스플리트와 느낌이 비슷했다. 과거에는 섬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지금은 일부 성벽 구간과 카메를렌고 요새(Kamerlengo Fortress)만 남아있다. 고풍스러운 골목길, 항구를 따라 늘어선 대형 요트들과 야자수 길이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하도 걷다 보니 슬슬 다리가 무거워졌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전에 묵었던 카를로바츠의 숙소로 갔다.



여덟째, 마지막 날(10월 21일)
여행의 마지막 날, 공항이 있는 자그레브로 향했다. 상부 도시는 대성당과 성 마르코 교회 등 중세 건축물이 즐비한 구시가지여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하부 도시는 박물관, 극장, 카페 등이 많은 현대적 중심지로, 전차가 다니고 있었다. 반 요시프 예라치치(Ban Josip Jelačić)는 크로아티아의 정치 지도자로 민족적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예라치치 광장은 만남의 장소이다. 광장 중심에는 군인답게 긴 칼을 들고 말을 타고 달리는 예라치치의 기마상이 있는데 목에 빨간 머플러를 둘러놓았다. 그러고 보니 매년 10월 18일이 크라바트의 날(Cravat Day)이다. 17세기 프랑스 용병으로 활약한 크로아티아 군인들이 착용한 빨간 머플러 ‘크라바트’는 넥타이의 기원으로 인정받아, 오늘날 그 전통이 기념되고 있다. 크로아티아 전역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동상마다 빨간 머플러를 두른다. 이 행사는 매년 10월 중순부터 약 일주일간 이어진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방문했을 때가 행사 기간이었다. 구시가지 골목에서 넥타이 상점을 보았는데 크로아티아 국기 문양이 그려진 넥타이가 눈에 띄었다.
자유 시간에 올리브 오일 전문점에 들렀는데, 이렇게 담백한 올리브 오일은 처음이었다. 이어서 ‘Vincek’이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대표 메뉴인 빈첵을 맛봤는데, 발칸에서 먹은 아이스크림 중 단연 최고였다.
어느새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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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갑자기 결정한 여행이라 별다른 기대도, 준비도 없었지만 돌아올 때의 만족감은 배가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은 물론이고, 가을의 정취까지 물씬 느껴져 시기도 딱 맞았다.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현지 일기예보에도 매일 비 소식이 있었지만 모두 비껴갔다.
그때 문득 ‘Did you order this beautiful weather?’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팀원들은 서로 자신이 ‘날씨 요정’이라며 웃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로 구성된 여행 팀이었지만, 모두가 화합하며 즐겁게 지냈다.
프로그램의 알찬 구성, 훌륭한 가성비, 그리고 아름다운 날씨까지,
이 모든 것은 ‘발칸의 여신’이 선물한 행운이었다.
여행 내내 웃음과 햇살이 함께한 시간, 그 ‘발칸의 빛’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무엇보다 박지인 팀장님의 밝고 세심한 리더십 덕분에 팀원 모두가 웃으며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후기가 도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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