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산호와 맹그로브의 나라, 마나도
옥*열 님
2026.02.13
조회 129
산호와 맹그로브의 나라, 마나도
- 2026.2.8.~2.12. 인도네시아 마나도 여행기 -
옥창열
매서운 겨울바람을 뒤로하고, 나는 적도 아래 상하의 나라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으로 향했다. 북술라웨시주의 주도, 마나도. 한국에서 직항 노선이 열린 지 이제 겨우 4개월 남짓 된 이곳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신흥 관광지의 설렘을 가득 품고 있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강렬한 태양과 습한 정글의 기운이 훅 밀려왔다. 2억 8천만 인구 대국이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도네시아, 그중에서도 K자 모양의 독특한 지형을 가진 술라웨시는 과거 철의 섬(Sula Wesi)이라 불렸던 역동적인 땅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온통 초록이었다. 잦은 비와 뜨거운 햇살 덕분인지, 한국에서는 용문산이나 반계리 같은 곳에서나 정성 들여 보호받을 법한 거대한 나무들이 이곳엔 지천으로 널렸다. 두툼하고 넓은 잎사귀들은 마치 대지의 숨구멍처럼 힘차게 뻗어 있다.
바다 밑 라이벌 전쟁과 강인한 맹그로브
여행 첫날, 호핑 투어를 위해 배를 타고 나갔다. 겨울 내내 햇볕에 굶주렸던 몸을 일광욕으로 달래며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곳은 별천지였다. 커다란 솥뚜껑만 한 바다거북이 유유히 유영하고,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군무를 추는 하얀 산호초의 천국.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왜 이 아름다운 산호초 사이에는 그 흔한 푸른 해조류가 보이지 않을까? 알고 보니, 산호와 해조류는 같은 바닥을 두고 싸우는 치열한 라이벌이라고 한다. 해조류가 무성해지면 산호를 덮어 질식시키고, 산호는 이에 맞서 화학 물질을 내뿜으며 해조류의 성장을 억제한다. 소나무 아래서 다른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고요해 보이는 바다 밑에서도 삶을 향한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해안가에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 숲도 인상적이었다. 짠 바닷물이 발목을 적시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튼실한 잎을 틔워낸 그 강인함은 경이로웠다. 자연에 완벽히 적응한 그 생명력이야말로 이 섬을 지탱하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천국의 화원, 토모혼과 로콘산
둘째 날에는 '꽃의 도시'라 불리는 토모혼으로 향했다. 마나도에서 차로 한 시간, 활화산인 로콘산 중턱의 '펠랑이(무지개 언덕)'에 닿았을 때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대한 꽃밭이 화산의 능선을 따라 펼쳐진 모습은 그야말로 '천국의 화원'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하니 곁에 없는 가족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며 집이 가장 편하다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이 찬란한 화원 속에 함께 서 있지 못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식물원 같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유황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부킷카싯에서 족욕을 하며 맛본 아삭한 삶은 옥수수는 일본 북해도의 온천 마을과는 또 다른 야생의 맛을 선사했다.
서로 다른 기도가 만나 하나로 흐르는 땅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회교 국가지만, 마나도만큼은 기독교 인구가 75%라고 한다. 시내를 둘러보니 기독교 교회와 도교 사원, 회교 사원이 공존하고 있었다. 비록 무교를 인정하지 않는 독특한 법률이 있긴 하지만,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이 이 거친 정글의 섬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마카테티 힐에서 내려다본 마나도의 전경은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풍경 속에는 정글과 야자수, 높이 솟은 화산과 푸른 바다, 그리고 현대적인 도심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언덕 위 부촌에 세워진 50m 높이의 거대한 예수상은 시민들을 향해 팔을 벌린 채, 이 땅의 모든 이들을 포용하는 듯 보였다. 부와 권력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이라지만, 그들이 정당한 노력으로 일군 삶의 터전이라면 그 아름다움을 탓할 이유는 없으리라.
현지인들은 까무잡잡한 피부와 투박하고 꾀죄죄한 인상이지만, 마주치는 그들의 눈빛은 한없이 온화하고 순박했다. 치안상태도 아주 좋다고 한다. 학교 앞이나 시골길을 지날 때면 고사리손을 흔들며 환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의 옛 유년 시절이 겹쳐 보여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간혹 키 크고 이목구비 뚜렷한 이들이 눈에 띄었는데,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혼혈 후손이라 한다. 역사란 사람의 얼굴에도 흔적을 남긴다.
여행이라는 보약, 다시 일상으로
술라웨시의 쌀밥은 찰기가 적어도 달콤했고, 옥수수죽인 비누테의 소박함은 정겨웠다. 비록 우리보다 소득은 낮을지 몰라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해변에서 담소하던 현지인들의 여유 속에서 진정한 행복의 지수는 수치 너머에 있음을 배웠다.
어느덧 마지막 날, 항공 스케줄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 호텔 수영장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축 처져 있던 몸이 며칠간의 행군과 버스의 흔들림 속에서 오히려 생기를 되찾았다. 여행을 해야만 건강이 유지되는 것을 보니, 나는 천생 여행 체질인가 보다.
인천공항에 내려 무사히 내 땅에 발을 디디니, 익숙한 공기가 나를 반긴다. 낯선 곳에서의 설렘도 좋지만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이 더 큰 행복임을 깨닫는다. 마나도의 붉은 노을과 로콘산의 꽃향기를 가슴에 품고, 나는 다시 힘차게 일상을 시작할 힘을 얻었다.
토모혼 연가-발라드
https://youtu.be/1_PJ6MMefHA
꽃피는 토모혼-팝 발라드
https://youtu.be/zcOb_Ogowno
https://youtu.be/NTsIJWP_s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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