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기
세번의 국경 하나의 코카서스, 구름 위의 길 설산 아래 야생화
주*용 님
2026.06.15
조회 42
여행을 떠나기 전 기대와 설렘 대신 염려와 근심이 마음 한켠을 가득 채웠다.
여행 예약 후에도 개인적인 일정이 쉼 없이 이어졌다. 몸은 이미 지쳐 있었고, 출발을 앞둔 시점에는 비행기를 타는 것조차 무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행의 설렘보다 걱정이 더 컸다.
출발은 어느 여행과 다르지 않게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 했고 장거리 비행이었지만 타슈켄트의 경유로 한번 숨을 고르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바람에 감탄했고 그의 해박한 고고학적 지식에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바쿠의 구 시가지, 유적들과 유전 지대들 그리고 조르아스터교의 불의 신전을 둘러보았다.불의 신전을 둘러보며 아제르바이잔이 왜 '불의 나라'라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표면으로 스며 나온 천연가스가 자연적으로 타오르던 현상은 고대인들에게 신성한 불로 여겨졌고, 이는 조르아스터교 신앙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적인 산유국이 된 아제르바이잔의 풍부한 유전 또한 같은 땅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래 전에 이란에서 보았던 조르아스터교의 불의 신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지리적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고부스탄 암각화는 선사시대 생활상과 신앙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었다. 특히 배를 젓는 그림과 둥굴게 춤을 추는 장면으로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이해 했다.
아제르바이잔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핵심적인 명소들을 둘러보며 유전을 보유한 나라의 부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카스피해를 품은 바쿠는 생각보다 세련되고 현대적이었다. 유리로 빛나는 신도시와 오래된 성곽 도시가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의 국경 산속 호텔의 숲 향기로 가방 가득 담아온 염려가 조금씩 씻겨 나갔다.
조지아의 국경을 넘는데 조금 낯설었다. 그동안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봤지만 좁은 통로와 고르지 않은 계단으로 캐리어를 끌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이 또한 여행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조지아에서 1일 일정을 마치고 다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으로 들어갔다. 국경을 넘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약간의 번거로움을 거쳤다. 그러나 아라랏산을 보고 싶어 했던 기대와 견주면 가벼운 통과의례였다.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아라랏산은 생각보다 더 웅장했다. 사진으로 수없이 보았던 산이 눈앞에 펼쳐지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세반호수, 창 교회, 동굴 도시 등 색다른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기회였다. 기독교의 박해와 외세의 침입 등을 피해 숨어 지냈던 동굴은 터키 데린구유와 비교 할 수 없을 만한 숭고하고도 장엄한 역사가 배어 있었다.
또 한번 예레반에서 조지아로 국경을 넘었다. 본격적인 조지아의 여행이 시작되었고 코카서스 3국 여행의 진수인 카즈베기에서 절정을 만났다. 조지아 군사하이웨이, 많은 여행자들이 "캅카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가운데 하나로 꼽았던 길이고, 19세기 러시아 작가인 미하일 레르몬토프와 알렉산드르 푸시킨도 이 길을 여행했던 길이다. 코카서스 산맥의 2천미터까지 오르는 길은 아슬아슬하며 아름답고 위험하면서 스릴 있는 길, 구름 위로 지나가는 천상의 길이었다.
그 길 너머에는 숨 막히는 아름다운 계곡, 바람에 흔들리는 야생화 설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와 신선한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투루소벨리의 야생화 군락지는 언제가 꿈속에서 뒹굴던 장소 같기도 했다. 현실이 아니듯하면서 분명 현실인 그 아름다움은 지상의 세상이 아닌 듯 했다. 일행 모두는 환호성을 지르며 초원을 뛰어다니며 뒹굴었다. 웅장한 설산 아래 펼쳐있는 야생화로 뒤덮인 융단 같은 초원은 하느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가꿀 수 없는 낙원 그 자체였다. 살아가는 동안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이었다. 이번 여행은 이 한 장면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매력을 느꼈다. 골목 골목에는오랜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이 도시가 왜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늘 궁금했던 실크로드의 여러 지점을 지나며 견문을 넓힐 수 있었다. 그동안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는 세 나라가 역사와 영토 문제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국경을 세 차례나 넘나들며 여행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반도 국가이자 분단국가인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했고,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
떠날 때 가방에는 약과 걱정이 가득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코카서스의 설산과 야생화, 국경의 들판과 사람들의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귀국 비행기 창밖으로 마지막 코카서스 산맥이 멀어질 때, 떠나기 전의 망설임이 무색할 만큼 큰 선물을 받고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불편한 가운데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이 팀을 운영하는 박유진 인솔자의 해박한 지식과 오랜 경험으로 쌓은 노하우로 팀을 이끌어 주는 덕분에 유익하고 깊은 인상이 남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몸 컨디션 때문에 와인너리에서 시음을 못한 것이다. 그래서 조지아를 떠나기 전에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국경을 넘을 때 펼쳐졌던 아름다운 들판과 멀리 보이던 설산, 지나는 양떼와 계곡의 물소리를 떠올리며 그 때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노랑풍선 여행사와 박유진 인솔자와 바쿠의 훗세인 가이드와 조지아의 현지 가이드를 비롯해 여행을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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